대학소개

미사강론 HOME > 대학소개 > 총장실
2023학년도 입학미사 강론
[ 작성일 : 2023-03-07, 조회 : 565 ]

    며칠 전, 이발하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은 다른 사람들을 멋지게 하는 직업을 가졌구나. 그래서 '멋진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입생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하고자 하시는 멋진 일의 협력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첫걸음에 하느님의 강복이 있기를 빌며, 우리 또한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왕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나선 나그네가 되었으니, 나그네의 삶을 먼저 시작한 처지에서 몇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익숙하게 살았던 여러분의 집, 따뜻하게 품어주셨고, 지금껏 의지하고 살았던 부모님의 품을 떠나십시오. 여러분은 때가 차서 어른이 되었고 이미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때가 차서 부모와 집과 고향을 떠나 광야의 나그네가 되셨습니다. 광야는 고행으로 가득찬 곳이 아니라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게 됨으로써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3)이 되는 자유를 얻는 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여러분 삶의 모든 역사와 과감하게 결별하십시오. 이 역사에는 여러분의 생각과 성격, 여러분의 관점과 삶의 이력들, 여러분의 취향과 습관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이제 여러분의 길에는 하느님 섭리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그 새로운 시작은 단순히 과거 부정이 아닙니다. 하느님 은총의 시선에서 여러분의 모든 역사를 전혀 달리 보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사제직을 준비하는 과정 동안 인기와 존경을 탐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십시오. 그것들은 틀림없이 여러분을 병들게 할 것입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누구나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크게 키워가길 빕니다. 사제직은 바로 그것을 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장차 사제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여정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빛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함께 일할 사람들을 빛나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생 그리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드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는 기도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새내기 신학도가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가장 인간적인 말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익히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와 같은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말이고 인간의 품위를 고양시키는 말들입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 언어 그리고 성경‧교의‧전례 등 모든 신학언어는 이런 말들에 숨을 불어넣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우리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의 뿌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 은총은 우리 모든 삶을 비추어주는 빛이며,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을 낳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부족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온전한 친교, 인간 서로의 우정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갈망입니다. 또한 이 말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작품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시기까지 기다리시며,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신다는 것을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이사 55,10-11 참조). 때때로 사랑이 버거울 때, 삶이 흔들릴 때마다 기억해 두십시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은 사실 쓸데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 스스로 길을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일이 여러분의 앞길을 비추어주는 동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