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개

미사강론 HOME > 대학소개 > 총장실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 백수(白壽) 기념미사 강론
[ 작성일 : 2022-10-05, 조회 : 251 ]
    오늘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님 백수 기념 미사에서 제가 강론을 할 줄은 (1년 전만 하더라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대주교님께서 평소에 되뇌시는 말씀 그대로 바로 오늘 저에게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하느님 섭리에 맡기면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어떻든 하느님의 섭리를 기꺼이 신뢰하면서 윤공희 대주교님의 백수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셔서 남북분단의 현실과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폭력적인 군부독재 시절과 5.18의 역사를 우리 민족과 함께 겪으시면서 살아오신 주교님의 삶의 여정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 멀리서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엿보는 수준에서 무어라 말씀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드리는 말씀은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합니다. 그저 몇 가지 단편적인 인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들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주교님께서 평소에 자주 인용하시고 들려주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은 시대를 뛰어넘어 주교님의 삶에 닿아 주교님 자신의 말씀이 되었고, 이제 오늘의 우리를 위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과거 지나간 일은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그 모든 것을 하느님 자비에 맡겨드리고, 현재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살아야 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하느님 섭리에 맡기면 된다.”(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328 이하)

    자신의 과거의 삶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드리라는 말씀은 서툴고 서툰 삶을 살아온 저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모든 자취 속에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해석되는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하느님의 은총 외엔 그 무엇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드리는 것만이 우리의 응답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삶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존재를 걸고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온 노력, 경험과 지식,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놓은 성과와 명성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해서만,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서만 걸어가는 자유로운 나그네의 풍모를 잃지 말라는 뜻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래의 삶은 다만 하느님의 섭리 속에 내어드리라는 말씀은 우리 시대의 모든 세대가 겪고 있는 불안과 걱정, 외로움과 우울함, 그리고 인간이 구상하는 세계상 너머에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그분의 섭리가 저와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리기를 기원해봅니다.

    이제 장면을 바꿔서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감히 외람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주교님에 대한 희미하고 어렴풋한 인상에 관한 것입니다. 그사이 드문드문 뵈온 과정 속에서 제가 발견한 주교님에 관한 세 가지 특이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침묵에 관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을 아끼고 침묵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대체로 매우 어렵고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말을 독점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말을 나누고 남의 말을 더 많이 더 기꺼이 경청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인간적인 품격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나이도 들고 지푸라기 권력도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고 불가능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 어렵고 불가능한 것을 주교님께서는 결코 어렵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둘째, 주교님께서는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고백하신 것을 글로도 읽고 말씀으로도 직접 들은 바가 있습니다. “나는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다. 살면서 눈물을 흘린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145) 적어도 중년 이상이 되면 웬만한 남성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말 그대로 눈물이 별로 없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어렵고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우한 시대에 형님과 동생이 모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큰 슬픔을 느끼셨다는 고백은 그 슬픔이 지금도 여전히 주교님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145-147 참조) 그러니 눈물이 별로 없게 되는 대단히 어렵고 불가능한 경우를 넘어서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어쩌다 이런저런 즐거운 자리에서 뵐 때마다 흥과 끼가 넘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생과 세월의 무게에 눌려 어깨와 몸이 가벼워지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물리적으로도 점차 불가능한 것같습니다. 그런데 주교님께서는 현직에 계실 때 쉽게 보지 못했던 흥과 끼가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 같아 너무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세월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만큼 더 어렵고 불가능하게 되기가 십상인데, 주교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백수의 해를 지내시면서 다 넘어서신 셈이니 그야말로 복되고 은총이 가득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교회의 주교로 살아오시면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해방과 구원,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지금, 당신의 협력자로서 함께 일했던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지금, 미래의 양 냄새나는 사제를 기원하면서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지금이야말로 주교 직무의 권위, 주교의 복음 선포 사명을 가장 깊은 의미에서 실현하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교님의 기도에 감사드리며, 저희 또한 주교님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주교님께서 노구를 이끄시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시는 기적을 저희에게 매일 보여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여 나중에 주교님께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실 때라도 그저 기적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기적의 다음에, 우리는 마침내 한 존재가 온전히 하느님만을 향해 서서 걸어가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기적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교님, 매일 매일, 그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교님의 주교 문장 표어처럼 주교님의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항상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