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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입학미사 강론
[ 작성일 : 2019-04-18 11:24:30, 조회 : 1145 ]

개교기념일 입학 미사

2019. 3. 7

         

1. 개교 57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우리 광주가톨릭대학교에는 29명의 신입생이 입학하였습니다. 광주 11, 전주 4, 제주 4, 마산 2, 살레시오회 7, 카리타스수녀회 1, 이렇게 모두 29명입니다.

    특히 올해는 동남쪽에서 귀한 분들이 오셨습니다. 마산교구 신입생 2명과 대학원 1학년 6명의 신학생이 이곳 못자리에서 함께 생활하며 양성을 받게 된 것입니다. 뜻 깊고 아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신학교는 설립 당시 광주관구와 대구관구의 교구연합신학교로 출범하였습니다. 1962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교령에 따라, 두 관구 주교님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 및 몇몇 수도회의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물론 196237, 곧 우리가 오늘 개교기념일로 경축하는 37일자로 국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고, 출범 당시의 대건신학교라는 명칭은 1985년 광주가톨릭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그사이 1982년 대구에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대구관구가 분리되고 우리 신학교는 광주관구만의 신학교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올해부터 마산교구의 신입생들이 이곳 못자리로 입학하게 되었고, 내년부터는 마산교구의 모든 신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양성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매우 의미 있는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로써 우리 신학교가 출범할 당시의 옛 모습을 다시 조금이나마 회복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사실 한국 교회의 신학교들이 신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여전히 많은 면에서 성직자들의 존재와 역할에 달려 있고, 그런 점에서 여전히 신학교에 많은 신학생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도록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2. 아무튼 올해부터는 마산교구 신학생들이 함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뜻 깊은 입학 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산교구가 함께하게 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단순히 우리 신학교가 출범할 당시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의 모습을 복원한다고 해서 미래가 저절로 열리지는 않습니다. 미래는 과거와 다르고, 또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신학교의 미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저희 교수단과 많은 분들의 노력과 신자들의 기도와 특히 무엇보다 부제님들과 신학생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 정식으로 광주가톨릭대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이곳 못자리 공동체의 식구와 일원이 되는 우리 신입생 여러분과 선배 신학생 여러분의 의지와 손에 우리 신학교의 미래가 달려 있고, 이 신학교의 미래 모습에 따라 한국 교회의 미래 모습도 많은 부분 결정될 것입니다.

    오늘날 현시대에서 사제로 산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이러한 어려움은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때문에 동시에, 이곳 신학교에서 사제를 양성하고 사제로 양성 받는 것 또한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제란 누구인가? 사제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 사제가 훌륭한 사제인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제는 어떤 사제인가?

    이런 질문들 앞에 서면, 자신을 찾고 길을 찾기다 점점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 결국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아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입니다.

    이 길에 대해 마침 오늘 복음은 확실하고도 단호하게 들려줍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길만이 우리를 확실한 미래로 안내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걸을 때만, 우리의 미래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염려하듯이, 그 길은 언제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그것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입니다. 각자에게 그 십자가는 다 다르지만, 그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는 아무도 앞서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길만이 자기 목숨을 구하는 길이라고 흔들림 없이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과 맞먹는다고, 아니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그것이 자기 목숨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그분은 아주 현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4.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이미 성직자가 된 부제님들과 저희를 포함해서 우리는 모두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우선 자기 목숨을 살려야 다른 이들의 목숨도 살린다고 나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목숨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한 가지 팁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 팁은 바로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자신을 버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많이 체감합니다. 그럼에도 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무엇보다 친애하는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 젊기 때문에 더 큰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젊기 때문에, 그 젊은 나이에 기꺼이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결심한 여러분을 예수님은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